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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사고 처리 바이블 '사실을 기록하다'

[이하영의 문서고 ⑪] 내동 LPG가스폭발사고 백서

이하영부천전문기자 serber11@hanmail.net

지방자치 발전은 주민의 선출한 직선제 시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부천시는 원혜영 시장이라는 ‘혜안’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계를 은퇴해 웰다잉 운동의 기수가 된 원 전시장은 ‘국회의원(14대)-부천시장(재선, 1998년~2003년)-국회의원(17~20대)‘이라는 매우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원 전시장의 혜안에 있어 빛나는 ‘선구안’은 공직자에 대한 교육입니다. 이 교육에는 공직자에 대한 직접적 교육만이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저장하는 기록에도 있습니다.

원 전시장 재임 중 가장 불행한 역사의 기록은 1998년 9월11일 오정구 내동에서 발생한 가스폭발사고입니다.

이날은 월요일입니다. 오후 2시가 넘어 경인고속도로 방면에서 큰 폭발 소리가 났습니다. 현장에서 불기둥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습니다. 당시 기자는 내동 소재 작은 연립주택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이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집으로 전화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1보를 보내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옥상에서 폭발방면을 바라보고 있어 집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날 엄청난 폭발은 충전소 지하저장 탱크에 주입하던 15톤 LPG탱크로리 외에도 부천 12톤 탱크로리, 소형가스통 550개가 연쇄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화재 진압 이후 지하에는 프로판 30톤, 부탄 40톤이 저장되어 있어 시민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습니다.

폭발 사고로 사망자가 1명, 중상 5명 등 총97명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일어났습니다. 차량도 70여대가 전소되고 52대가 일부 소실되었답니다.

이뿐 아니라 인근 공장 41곳이 1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보았습니다. 이 중에는 수출을 하지 못해 더 큰 피해를 본 기업이 있었습니다.

그 후 2년이 지난 2000년 5월 부천시는 [가스폭발사고 백서]를 발간합니다. 편집위원장은 김인규 당시 경제통상국장입니다. 원혜영 시장은 발간사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내동 가스폭발사고의 백서발간은 사고의 원인 및 발생과정과 수습과정들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사고의 상황을 철저히 분석하고 근본적인 가스사고 예방과 안전관리 대책에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안을 강구해 나감으로써 우리 모두의 각오를 새롭게 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발간사에는 이런 발언도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안전관리의 망각에서 깨어나 모든 재난에 능동적으로 대비해 나가고 모든 위험 시설물 관리에 철저를 기해 나가야 할 것이며, 이번의 엄청난 사고 앛ㅍ에 뼈아픈 자성과 안전의식에 대한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총179쪽에 달하는 백서에는 당시 대위변제라는 기상천외의 보상재원 확보와 관련한 자세한 기록도 나옵니다.

당시 재난구역 선포 여건 미충족, 시민성금도 기부금품모집규제법 개정으로 보상재원 마련이 막막하자 당시 행정자치부 승인을 받아 120억원에 달하는 지방채를 발행해 사고수습에 나선 부천시 행정의 자세한 기록도 담겼습니다.

물론 백서는 완결판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후 2001년 부천시의회에서 이 대위변제가 논란이 일었고, 선보상 문제와 관련해 담당 국장이 돌연 명예퇴직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그해 3월 부천시의회는 시가 상정한 120억원 지방채 승인을 보류합니다. 그 이유는 예산액 120억원의 50%인 60억원을 경기도가 별도의 사업비로 지원해 주는 조건이 선행된 후 나중 예산을 편성키로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부천시의회 예결위 속기록을 보면 여야 의원의 극단적 인식차가 드러납니다.

나중 재선의 국회의원이 된 임해규 시의원(현 두원공과대학 총장)은 "선의의 피해자는 도와줘야 하나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법원의 판결에 의해서 결정이 될 터인데 그 점에 대해 확실한 답을 예측하기 힘들다"며 "부결이 옳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반면 올 총선에서 낙선한 한병환 의원(현 부천문화재단 대표)은 "집행부 안대로 통과시켜 하루빨리 이 피해자들이 피해를 복구하고 생산현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의회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입니다.

상임위에서 삭감된 예산은 예결위원회 거수투표결과 5대2로 기사회생했습니다.

백서를 보면 당시 시민사회의 발 빠른 대응도 눈길을 끕니다. 시민대책위가 구성되었는데 대책위원으로 부천YMCA 이래일 총장, 부천시민연합 백선기 대표, 부천민노총 이재윤 의장, 부천경실련 신철영 대표, 시의회 박노설 부의장, 푸른마을 이연리 회장, 변호사 조영상 등이 있습니다.

박 부의장은 내동(신흥동)을 지역구로 둔 시의원입니다. 그는 당시 구성된 부천시의회 가스특위 위원장에 선임됩니다. 물론 이후 부천시는 외곽순환고속도로 하부공간 폭발사고로 이때의 백서를 무색하게 만든 사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크고 작은 사고에서 부천시가 백서까지 발행해 '고해성사'를 한 일은 전무휴무한 사건 입니다.

21세기, 지난 22일 밤 발생한 부천시청 지척 호텔 한 곳 화재로 무려 7명이 사망한 사고 수습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20세기 막바지인 98년 내동가스 폭발사고 수습 처리 내용을 보면서 만감에 젖습니다.

이하영부천전문기자 serber11@hanmail.net

기사등록 2024-08-26 11: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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